2009. 2. 8. 20:10

[세계의 창] 멸종위기의 ‘만주어’

[경향신문 2007-03-23 16:14:23]
‘대제국의 목소리는 이제 아주 희미하게 들릴 뿐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만주어가 통용되고 있는 마지막 마을인 중국 동북부의 산자쯔를 다룬 르포 기사를 최근 소개했다.
많은 언어가 생겨나고 사라졌지만, 만주어처럼 급속하게 몰락의 길을 걸은 언어는 흔치 않다. 1644년 명(明)의 수도였던 베이징(北京)을 점령한 만주족은 중국 역사상 가장 강대한 제국, 청(淸)의 이름으로 중원과 만주를 아울러 통치했다. 만주어는 전 중국의 공식 언어였다.


그러나 1911년 청나라가 망하자 만주어는 100년도 지나기 전에 말을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100여명도 안 될 정도로 빠르게 소멸했다. 이제 만주어는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중환자와 같은 처지에 놓였다.

NYT 기자가 산자쯔를 찾았을 때 멍수이징 할머니(82)는 증손자를 재우고 있었다. 할머니는 “아가야. 어서 자거라. 네가 잠들어야 엄마는 일하러 가지. 엄마는 불 피우고 음식 만들고 돼지들에게 먹이 주련다”라는 자장가를 만주어로 불렀다.
만주어 자장가를 듣고 자란 이 아기가 커서 만주어를 들려주며 아이를 재울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주민 1054명 중 3분의 2가 만주인으로 중국 내에서 가장 두드러진 만주족 집단 거주지인 이 마을에서도 만주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80대를 넘긴 노인 18명뿐이다.
현재 중국에서 자신들을 만주족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은 1000만명 정도다. 이들은 랴오닝(遼寧), 지린(吉林), 헤이룽장(黑龍江) 성 등 동북부 지역에 주로 산다. 일부는 베이징과 다른 북부 지방 대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만주인들은 1000만명이 되지만, 거의 대부분이 중국어만을 쓰고 있다. 수백만명, 혹은 수십만명에 불과한 다른 소수 민족들이 학교를 세우고 신문을 발행하며 고유언어를 지켜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만주족은 한족에 동화돼 극히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언어를 지키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
만주족들이 즐겨 입는 옷, 주택과 생활습관도 이제는 한족이 주도하는 중국식으로 바뀐 상태다. 산자쯔와 같은 외딴 마을에서만 고유의 습관이 일부 남아 있을 뿐이다.
“우리는 개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개털로 만든 모자도 쓰지 않아요.”
산자쯔에서 만주어를 가르치기도 했던 자오진춘은 만주족들은 개를 존중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개를 어떻게 ‘대우’하느냐는, 만주족과 한족을 가르는 중요한 차이점 중의 하나다. 만주족들은 청나라를 세운 누르하치(태조·1559~1626)의 생명을 구해준 동물이라며 개에게 각별한 사랑을 쏟는다.
지금 중국에서 만주어 교습이 이뤄지고 있는 곳은 멍 할머니의 손자인 스준광(30)이 연 산자쯔의 조그마한 학교가 유일하다. 7세부터 12세까지의 어린이 76명이 만주어를 배우고 있다. 스준광은 “우리가 우리말을 잃는 것은 정말 큰 아픔이다”라며 5살 난 아들에게 증조할머니와 만주어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고 있다. 만주어를 지키려는 힘겨운 노력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만주어의 소멸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50대인 자오는 “우리 세대에서는 만주어로 의사소통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산자쯔에서조차 대부분 집에서 중국어로 말을 한다”고 말했다. 만주인 가정내에서도 만주어를 쓰지 않게 되면 다음 세대에 만주어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만주족 출신으로 헤이룽장대 교수인 자오아핑은 “만주어는 살아있는 화석과 같은 존재”라며 “만주족 언어와 문화를 지키려는 노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성과를 거두기는 매우 힘든 실정”이라고 말했다.
〈김용석기자 kimys@kyunghyang.com〉-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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