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3. 17:03
머릿말 : 한민족 역사의 출발점, 배달국 홍산문화 우하량유적지
현재 동북공정사업의 성공적인 종료와 이어지는 요하문명공정사업으로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한 자신들의 한민족역사강탈사업이 본 궤도에 오름에 따라 자신감이 충만한 China당국은 홍산문화를 최초의 중화문명시원이라 세계를 향하여 선전하면서 동이족이 남긴 많은 홍산문화 발굴현장 사진들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기존 공개분보다 광범위하고 뚜렷해진 아래의 최근 공개 사진들은 이러한 China의 자신감을 표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신석기시대 홍산문화전체시기(BC4500~3000)중에서 기원전3500~3000년의 홍산문화만기에 해당하는 1984년 발굴된 우하량유적지는 우리역사 배달국시기중 대략 5대 태우의환웅부터 10대인 갈고환웅시기에 해당하는 중기로 완전히 만개해 성숙되어 있던 고대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역사유물입니다.
(China는 이 시대를 동석병용시대로 봅니다.)
사실상, 이 시기는 문명이 완전한 국가단계로 진입하여 꽃 핀 시대이며 문화교류의 범위를 넘어서서 대륙의 내륙지역인 앙소문화지역일대로 본격적인 진출이 이루어지면서 만개한 홍산문화가 이들 지역으로 광범위하게 전파된 때입니다.
여기서, 앙소문화는 현재 폐기되고 있는 세계 4대문명론에서 말하는 흔히 중국문명의 시초라 일컫는 황하문명을 말하며 감숙성의 마가요유형과 서안의 반파유형, 그리고 하남성의 묘저구유형의 3지역으로 나뉘어지며 붉은 채색토기가 특징입니다.
최근 동아일보 2007년 2월 16일자 신문에 실린 서북지역 소수민족의 기원과 이동경로를 파악하기 위하여 China 난주대학 생명과학원에서 수년간에 걸쳐 이루어진 China한족과 서북지역 소수민족의 유전자(DNA)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소동교수는 한족들이 스스로 그들의 후손이라 여기는 헌원(황제)와 신농(염제)에 대해 그 발원지가 중원이 아니며 북쪽 오랑캐땅인 북적지역으로 헌원부족의 발원지는 감숙성 심양에서 천수에 이르는 지역이고 염제부족의 발원지는 감숙성 동부에서 섬서성에 이르는 황토고원으로 이들지역이 바로 북적지역이라고 밝혔습니다.
바로, 감숙성의 마가요유형과 서안의 반파유형이 각각 헌원부족과 염제부족과 연결이 되며 홍산문화만기인 기원전 3500년무렵부터는 홍산문화의 본격적인 영향력이 이 일대에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오랜 세월에 걸쳐 주변민족이나 국가와 융합하여 순수한 한족은 현재에 존재하지 않으며 한족이라는 고대중원인의 문화전통을 가장 잘 계승한 집단은 객가인이 유일하다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China 사서에서 3황5제의 신화시대 인물이라 말하는 태호복희씨나 여와씨나 신농씨는 전부 이 시기에 등장하며 이들이 바로 홍산문화를 가지고 앙소문화지역일대로 진출한 역사적인 주인공들이라고 생각됩니다.
사실상, 헌원부족과 관련있는 문화는 마가요유형뿐이며 서토고원의 고대중원인의 문화전통을 계승했다는 객가인도 헌원부족이 아닌 염제부족의 후예라고 보는 견해가 유력합니다. 사실상, 현재 고대 중원인의 전통을 혈연적,문화적으로 완벽히 계승한 한족이라는 집단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것이지요.
더우기, 사마천의 사기등을 보면 한발 더 나아가 서안의 반파유형은 사서에 나온대로 주대말엽까지 섬서성일대는 대부분 서융오랑캐의 땅이라 보아야 하므로 묘저구유형이 바로 서융세력에 문화를 전파한 태호복희나 여와씨나 신농씨의 문화로 밖에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하나라나 주나라는 서융세력과 앞선 문화를 전파한 동이세력이 섞여 융합한 묘저구문화지역을 바탕으로 하며 여기에서 당요나 하우 그리고 서주의 세력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사실에도 불구하고 China는 홍산문화전체가 동이족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인정하지만 홍산문화를 일군 동이족의 기원은 황제의 손자인 고양씨 전욱과 고신씨 제곡의 후예들이라 강변하면서 더불어 원칙적으로 현 중국영토내 모든 소수민족의 역사도 중화민족의 역사로 보아야 하므로 고대의 동이족들도 다민족통일국가인 중화민족에 융합된 수많은 소수민족의 하나라 주장합니다.
이에 따라, 동이족의 역사를 정체불명의 뿌리조차없는 해괴한 중화민족의 역사의 일부분으로 편입하였습니다.
현재, China는 홍산문명을 정체성을 알 수없는 중화민족의 최초 시원문명이라 전세계에 역설하며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수천년동안 변방의 오랑캐라 멸시하던 한민족의 조상인 동이족의 문화를 중화민족 최초의 시원문명이라 왜곡하고 홍산문화(BC4500~3000)가 훨씬 역사가 빠른데도 앙소문화-정확히는 마가요유형-의 후계로 소하연문화(BC3000~2000)시기에 앙소문화지역에 등장하는 황제의 손자인 고양씨 전욱과 고신씨 제곡의 후예들이 홍산문화를 일군 동이족의 조상이라는 괴변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서와 요동, 몽골일대를 중심으로 남북만주지역과 한반도를 포함한 이 지역은 신석기 4대 문화벨트인 1)거석문화권 2)채도문화권 3)빗살무늬토기문화권 4)세석기 문화권이 모두 수용되고 융합된 세계에서 유일한 신석기문화지역으로 채도문화권만을 특징으로 하는 농경문화인 앙소문화(중원문화)와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문화권이며 여기에서 태어난 홍산문명은 그들보다 수천년을 앞선 지역입니다.
고대, 새로운 문명의 주역이었던 북방유목민족들은 구태여 험한 산맥과 사막을 거쳐 굳이 감숙,섬서성일대의 내륙고원으로 들어갈 필요없이 중앙아시아에서 광활하게 열려있는 몽골의 초원을 중심으로 서로는 천산산맥과 파미르를 넘어서까지 동으로는 현재의 요서,요동일대와 만주지역을 지나 한반도와 일본열도와 캄차캬반도 넘어서까지 아주 먼 과거로부터 새로운 문화를 계속 전파해 왔습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학계든 정부든 모두가 이를 침묵,방관하며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어서 이대로 홍산문화의 주인공이 진정으로 누구인지 밝혀내지 못하고 홍산문화와 더불어 그 문화의 계승자인 단군조선,북부여,고구려,백제,발해등의 역사까지 모조리 China에게 눈뜨고 강탈당할 위난에 몰려 있습니다.
요녕성遼寧城 우하량牛河梁 홍산문화紅山文化 유적지 발굴현장 (1)
홍산문화 우하량유적 출토지역은 내몽골의 적봉(Chifeng)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이며 그 지리적 위치는 아래와 같습니다.
그림 1. 내몽골과 발해만지역지도
그림 2. 홍산문화 분포지역
1984년 발굴된 아래 요녕성 우하량 홍산문화 발굴현장사진에서 보여주는 6천년전의 묘장墓葬방식은 묘혈墓穴위에 엷은 석판을 덮어 묻은 위에 다시 석괴石塊를 쌓은 동이족의 전형적인 적석총積石塚양식입니다.
그림 3. 1984년 요녕성 우하량牛河梁 홍산문화유적지 제2발굴지점의 적석총積石塚
그림 4. 현 우하량牛河梁 홍산문화 제2발굴지점에 세워진 비석
그림 5. 요녕성 우하량牛河梁 홍산 제2지점 2호 적석총 중심대묘中心大墓(이미 도굴된 묘)
그림 6-8. 요녕성 우하량牛河梁 홍산 제2지점 1호 적석총 4호묘 (3점의 뛰어난 옥기玉器 촐토)
그림 9. 제 1번 마제형옥기馬蹄形玉器(말굽형옥기) : 높이 18.6cm,직경 上10.7cm 下7.4cm,두께 0.3 ~ 0.7cm
그림 10. 마제형옥기마제형옥馬蹄形玉器 보관처리후 모습(앞면)
그림 11. 마제형옥기마제형옥馬蹄形玉器 보관처리후 모습(둿면)
그림 12. 제 2번 옥저룡玉豬龍 : 높이 10.3cm,너비 7.8cm,두께 3.3cm
그림 13. 제 2번 옥저룡玉豬龍 보관처리후 모습
그림14. 제 3번 옥저룡玉豬龍 : 높이 7.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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