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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9.30 몽골 투르크 비문의 한-몽 공동 탁본사업의 출발 - 흥선스님 1
- 2012.12.03 배달국 홍산문화 우하량유적지 발굴현장 1
- 2009.02.08 몽골문자와 만주문자 - 언어학자 성백인교수
- 2009.02.08 기초만한사전, 김득황편저 - 대지문화사(199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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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3. 17:03
머릿말 : 한민족 역사의 출발점, 배달국 홍산문화 우하량유적지
현재 동북공정사업의 성공적인 종료와 이어지는 요하문명공정사업으로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한 자신들의 한민족역사강탈사업이 본 궤도에 오름에 따라 자신감이 충만한 China당국은 홍산문화를 최초의 중화문명시원이라 세계를 향하여 선전하면서 동이족이 남긴 많은 홍산문화 발굴현장 사진들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기존 공개분보다 광범위하고 뚜렷해진 아래의 최근 공개 사진들은 이러한 China의 자신감을 표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신석기시대 홍산문화전체시기(BC4500~3000)중에서 기원전3500~3000년의 홍산문화만기에 해당하는 1984년 발굴된 우하량유적지는 우리역사 배달국시기중 대략 5대 태우의환웅부터 10대인 갈고환웅시기에 해당하는 중기로 완전히 만개해 성숙되어 있던 고대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역사유물입니다.
(China는 이 시대를 동석병용시대로 봅니다.)
사실상, 이 시기는 문명이 완전한 국가단계로 진입하여 꽃 핀 시대이며 문화교류의 범위를 넘어서서 대륙의 내륙지역인 앙소문화지역일대로 본격적인 진출이 이루어지면서 만개한 홍산문화가 이들 지역으로 광범위하게 전파된 때입니다.
여기서, 앙소문화는 현재 폐기되고 있는 세계 4대문명론에서 말하는 흔히 중국문명의 시초라 일컫는 황하문명을 말하며 감숙성의 마가요유형과 서안의 반파유형, 그리고 하남성의 묘저구유형의 3지역으로 나뉘어지며 붉은 채색토기가 특징입니다.
최근 동아일보 2007년 2월 16일자 신문에 실린 서북지역 소수민족의 기원과 이동경로를 파악하기 위하여 China 난주대학 생명과학원에서 수년간에 걸쳐 이루어진 China한족과 서북지역 소수민족의 유전자(DNA)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소동교수는 한족들이 스스로 그들의 후손이라 여기는 헌원(황제)와 신농(염제)에 대해 그 발원지가 중원이 아니며 북쪽 오랑캐땅인 북적지역으로 헌원부족의 발원지는 감숙성 심양에서 천수에 이르는 지역이고 염제부족의 발원지는 감숙성 동부에서 섬서성에 이르는 황토고원으로 이들지역이 바로 북적지역이라고 밝혔습니다.
바로, 감숙성의 마가요유형과 서안의 반파유형이 각각 헌원부족과 염제부족과 연결이 되며 홍산문화만기인 기원전 3500년무렵부터는 홍산문화의 본격적인 영향력이 이 일대에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오랜 세월에 걸쳐 주변민족이나 국가와 융합하여 순수한 한족은 현재에 존재하지 않으며 한족이라는 고대중원인의 문화전통을 가장 잘 계승한 집단은 객가인이 유일하다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China 사서에서 3황5제의 신화시대 인물이라 말하는 태호복희씨나 여와씨나 신농씨는 전부 이 시기에 등장하며 이들이 바로 홍산문화를 가지고 앙소문화지역일대로 진출한 역사적인 주인공들이라고 생각됩니다.
사실상, 헌원부족과 관련있는 문화는 마가요유형뿐이며 서토고원의 고대중원인의 문화전통을 계승했다는 객가인도 헌원부족이 아닌 염제부족의 후예라고 보는 견해가 유력합니다. 사실상, 현재 고대 중원인의 전통을 혈연적,문화적으로 완벽히 계승한 한족이라는 집단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것이지요.
더우기, 사마천의 사기등을 보면 한발 더 나아가 서안의 반파유형은 사서에 나온대로 주대말엽까지 섬서성일대는 대부분 서융오랑캐의 땅이라 보아야 하므로 묘저구유형이 바로 서융세력에 문화를 전파한 태호복희나 여와씨나 신농씨의 문화로 밖에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하나라나 주나라는 서융세력과 앞선 문화를 전파한 동이세력이 섞여 융합한 묘저구문화지역을 바탕으로 하며 여기에서 당요나 하우 그리고 서주의 세력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사실에도 불구하고 China는 홍산문화전체가 동이족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인정하지만 홍산문화를 일군 동이족의 기원은 황제의 손자인 고양씨 전욱과 고신씨 제곡의 후예들이라 강변하면서 더불어 원칙적으로 현 중국영토내 모든 소수민족의 역사도 중화민족의 역사로 보아야 하므로 고대의 동이족들도 다민족통일국가인 중화민족에 융합된 수많은 소수민족의 하나라 주장합니다.
이에 따라, 동이족의 역사를 정체불명의 뿌리조차없는 해괴한 중화민족의 역사의 일부분으로 편입하였습니다.
현재, China는 홍산문명을 정체성을 알 수없는 중화민족의 최초 시원문명이라 전세계에 역설하며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수천년동안 변방의 오랑캐라 멸시하던 한민족의 조상인 동이족의 문화를 중화민족 최초의 시원문명이라 왜곡하고 홍산문화(BC4500~3000)가 훨씬 역사가 빠른데도 앙소문화-정확히는 마가요유형-의 후계로 소하연문화(BC3000~2000)시기에 앙소문화지역에 등장하는 황제의 손자인 고양씨 전욱과 고신씨 제곡의 후예들이 홍산문화를 일군 동이족의 조상이라는 괴변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서와 요동, 몽골일대를 중심으로 남북만주지역과 한반도를 포함한 이 지역은 신석기 4대 문화벨트인 1)거석문화권 2)채도문화권 3)빗살무늬토기문화권 4)세석기 문화권이 모두 수용되고 융합된 세계에서 유일한 신석기문화지역으로 채도문화권만을 특징으로 하는 농경문화인 앙소문화(중원문화)와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문화권이며 여기에서 태어난 홍산문명은 그들보다 수천년을 앞선 지역입니다.
고대, 새로운 문명의 주역이었던 북방유목민족들은 구태여 험한 산맥과 사막을 거쳐 굳이 감숙,섬서성일대의 내륙고원으로 들어갈 필요없이 중앙아시아에서 광활하게 열려있는 몽골의 초원을 중심으로 서로는 천산산맥과 파미르를 넘어서까지 동으로는 현재의 요서,요동일대와 만주지역을 지나 한반도와 일본열도와 캄차캬반도 넘어서까지 아주 먼 과거로부터 새로운 문화를 계속 전파해 왔습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학계든 정부든 모두가 이를 침묵,방관하며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어서 이대로 홍산문화의 주인공이 진정으로 누구인지 밝혀내지 못하고 홍산문화와 더불어 그 문화의 계승자인 단군조선,북부여,고구려,백제,발해등의 역사까지 모조리 China에게 눈뜨고 강탈당할 위난에 몰려 있습니다.
요녕성遼寧城 우하량牛河梁 홍산문화紅山文化 유적지 발굴현장 (1)
홍산문화 우하량유적 출토지역은 내몽골의 적봉(Chifeng)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이며 그 지리적 위치는 아래와 같습니다.
그림 1. 내몽골과 발해만지역지도
그림 2. 홍산문화 분포지역
1984년 발굴된 아래 요녕성 우하량 홍산문화 발굴현장사진에서 보여주는 6천년전의 묘장墓葬방식은 묘혈墓穴위에 엷은 석판을 덮어 묻은 위에 다시 석괴石塊를 쌓은 동이족의 전형적인 적석총積石塚양식입니다.
그림 3. 1984년 요녕성 우하량牛河梁 홍산문화유적지 제2발굴지점의 적석총積石塚
그림 4. 현 우하량牛河梁 홍산문화 제2발굴지점에 세워진 비석
그림 5. 요녕성 우하량牛河梁 홍산 제2지점 2호 적석총 중심대묘中心大墓(이미 도굴된 묘)
그림 6-8. 요녕성 우하량牛河梁 홍산 제2지점 1호 적석총 4호묘 (3점의 뛰어난 옥기玉器 촐토)
그림 9. 제 1번 마제형옥기馬蹄形玉器(말굽형옥기) : 높이 18.6cm,직경 上10.7cm 下7.4cm,두께 0.3 ~ 0.7cm
그림 10. 마제형옥기마제형옥馬蹄形玉器 보관처리후 모습(앞면)
그림 11. 마제형옥기마제형옥馬蹄形玉器 보관처리후 모습(둿면)
그림 12. 제 2번 옥저룡玉豬龍 : 높이 10.3cm,너비 7.8cm,두께 3.3cm
그림 13. 제 2번 옥저룡玉豬龍 보관처리후 모습
그림14. 제 3번 옥저룡玉豬龍 : 높이 7.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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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2. 8. 21:57
몽골 문자와 만주 문자
성 백 인 / (서울대 교수, 언어학)
몽골 문자와 만주 문자는 모두 독창적으로 창제된 문자가 아니라 인접한 민족들이 사용하는 문자를 차용한 문자들이다. 만주 문자는 몽골 문자를 차용한 것이고, 몽골 문자는 위구르 문자를 차용한 것이다. 고대 토이기족의 한 분파인 위구르족이 사용하던 위구르 문자도 역시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소그드 문자를 차용한 것이다. 소그드족은 고대 이란족의 한 분파이다. 그렇게 그 계보를 찾아 올라가면 그 시원은 로마자나 씨릴 문자의 시원과 동일한 고대 문자로 거슬러 올라간다. 즉, 소그드 문자는 아람 문자로, 아람 문자는 페니키아 문자로, 이는 또 시나이 문자로, 시나이 문자는 고대 이집트의 상형 문자로 그 계보가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 몽골 문자
몽골족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대개 13세기 초엽 칭기즈 칸 시대에 위구르 문자를 차용하여 몽골 말을 적기 시작하였다. 이 차용 문자로 쓰여진 가장 오래된 기록은 1225년경에 세운 칭기즈 칸의 조카, 이숭거(Yisüngge)의 기념비이다. 이 위구르 문자에 기원을 둔 몽골 문자는 몽골에 들어와 사용되면서 점차 글자의 모양이 변개되었고, 몽골어를 적는 데 또는 외래어를 적는 데 필요한 새로운 문자가 추가되어 문자의 수도 늘게 되었다.
몽골 문자는 크게 위구르식 몽골 문자와 현대 몽골 문자로 구분한다. 위구르 문자의 자형상의 특징이 대체로 유지되는 16세기 말, 또는 문헌에 따라서는 17세기 초까지의 몽골 문자를 위구르식 몽고자라 하고, 문자의 자형이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표기법도 상당히 변모되는 17세기 초 이후의 문자를 현대 몽골자라 한다. 현대 몽골자란 17∼18세기의 고전기로부터 현대까지의 문자를 통틀어 이르는 것이다.
1648년에는 몽골어 서부 방언인 오이라트 방언을 표기하기 위하여, 자야판디타(Zaya Pandita, 札亞班迪達)라는 사람이 몽골 문자를 개량하여, 오이라트 방언의 음소를 보다 잘 구별하여 적을 수 있는 토도(todo, 托忒또는 陶德)라고 하는 새로운 문자를 만들었다. 이 토도 문자는 몽골자의 세력에 밀리면서 명맥을 유지하다가, 외몽골에 속하는 지역에서는 1944년에, 그리고 내몽고에 속하는 지역에서는 1984년에 공식적으로는 그 명맥이 끊어졌다.
元나라 世祖 至元 6년(1269)에는 八思巴라는 학덕이 높은 승려가 세조의 명을 받아, 티베트 문자를 개량하여 파스파(P'ags-pa, 八思巴)문자라고 하는 새로운 문자를 만들었다. 이 새로운 문자는 元의 國書로 만들어진 것인데 元의 세력 안에 들어 있는 모든 언어 즉 몽고어, 한어(漢語), 티베트어, 토이기어 등을 두루 잘 적을 수 있도록 고안된 표음력이 뛰어난 문자였다. 그러나 元나라가 망하자, 위구르식의 몽골 문자의 세력에 밀려 사라져 버렸다. 오늘날 비문이나 고문서로 남아 전하고 있는데, 파스파 문자는 그 뛰어난 표음력으로 하여 당시의 몽골어는 물론 동양의 여러 나라의 옛 언어의 연구에 도움을 주고 있다.
위구르계의 몽골 문자는 오늘날에는 내몽골 자치구에서만 사용되고 있다. 외몽골 즉 몽골인민공화국에서는 우여곡절 끝에 1944년에 위구르계의 몽골 문자를 버리고, 씨릴 문자를 차용하여 새 몽골 문자를 만들어 가지고 할하 방언에 기초를 둔 새로운 문어를 제정하였다.
위구르 계통의 몽골 문자는 위구르식 몽골자와 현대 몽골자로 구분되고 있음을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데, 위구르식 몽골자나 현대 몽골자나 그 자형과 표기 체계가 일정하게 통일되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여기서 그 변천 과정을 모두 나열 설명할 수는 없다. 현대 몽골자만 해도 인쇄체와 필사체가 다르고, 인쇄체는 또 판본체와 활자체가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필사체는 또 행서체와 초서체로 구별된다. 그러나 변별 기능을 하는 글자의 기본적 특징에 있어서는 서로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여기서는 고전기 현대 몽골자의 인쇄체를 중심으로 몽골 문자의 기본적 특징을 간단히 설명하기로 한다.
다음 <문자표 1>은 Poppe(1965)의 Introduction to Altaic Linguistics에서 옮긴 것인데, 이는 17∼18세기 고전기 몽골 문어에 보이는 대표적인 현대 몽골자이다. <문자표 2>와 <문자표 3>은 道布 편저(1983),《蒙古語簡志》에서 옮긴 것인데, 2는 청대 몽고 문헌에서 시작하여 오늘날 흔히 쓰이는 현대 몽골자이고, 3은 위구르식 몽골자이다.
몽골 문자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쓰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행을 이어 나간다. 그리고 각 글자는 어두, 어중, 어말의 위치에 따라 자형이 달라지며, 또 자음의 경우 뒤따르는 모음의 종류에 따라 그리고 다른 자음 앞에 놓이는 경우 자형이 달라지는 수가 있다. 그 밖에 어말에서 격 표시 어미와 같은 몇 가지 부가 성분은 위 낱말에 붙여 쓰지 않고 띄어 쓰는 일이 있다. 이를 어말 독립형이라 부른다. 인쇄의 편의상 표1의 순서에 따라 몇 글자의 특징을 설명하기로 한다.
[몽고 문자표 1] (고전기) 현대 몽골자 표
[몽고 문자표 2] 현대 몽골자 표
[문자표 3] 위구르식 몽골자 표
1. a가 다른 글자와 구별되는 기본적 특징은 어두에서는 두 번, 어중과 어말에서는 한 번 중선을 기준으로 좌측 90°각도로 그은 획이다. 그 밖의 다른 특징들은 각 시대의 서법의 특징에 불과하다. 어말형 두 번째(우측) 자형은 b,p,k,g에 이어지는 글자인데, 이때에도 반드시 좌로 a 표시의 획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어말 독립형의 경우에는 표1 및 2의 두 번째 글자처럼 좌로 그은 획이 없는 것이 보통이다.
2. e는 어두에서만 a와 구별된다. 어중과 어말에서 자형상으로는 a와 구별이 되지 않는데, q,Υ,k,g에 연할 때는 앞 자음에 의해서 a 와 e가 구별된다. e자는 자형상으로는 모든 모음자의 기본이 된다. 즉 어두에서는 모든 모음자는 e자와 같이 좌로 90°각도로 그은 획에서 시작된다. 자형상으로는 a자는 e자에 같은 모양의 한 획을 더하고, i자는 사선을 더하고, o,u자는 좌측으로 동그라미를 더하고 , 자는 o,u자 밑에 사선을 더하는 모양이 된다. 결국 모음자들의 기본적인 획은 종선에서 좌로 긋는 90°각도의 획과, 45°각도의 사획과, 동그라미가 되는 셈이다.
3. i자의 변별적 특징은 좌측 45°각도로 내려그은 획이다. 어두에서는 e자와 같은 자형 밑에 그 변별적 특징이 되는 사획을 긋고, 어말에서는 기본 특징이 되는 사획의 우측을 둥글게 돌려 마무리한다.
4. o,u자의 기본적 변별 특징은 좌로 돌린 동그라미인데, 어말자의 경우, 표에는 없지만, b,p에 연할 경우 오른쪽으로 돌리는 획이 없다.
5. ö, ü자는 o,u자 아래에 어중 i자와 같은 획을 더한다. 그러나 어중에서는 일반적으로 o,u자와 같은 자형을 쓴다.
6. n자는 e자 좌측에 점을 더한 것이 그 특징인데, 어중에서는 모음 앞에서는 점을 더하고, 자음 앞에서는 점을 찍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더러는 자음자 앞의 n에 점을 찍은 경우도 있고, 옛 문헌으로 올라가면 모든 n에 전혀 점을 가하지 않은 문헌도 있다.
8.9. q(χ)와 Υ 의 구별은 Υ 에는 좌측에 두 점을 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음 앞과 어말의 Υ 에는 점을 가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문헌에 따라서는 어느 위치에도 Υ 에 점을 가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어떤 문헌에서는 Υ 에는 점이 없고 q에 점을 가한 경우도 보인다.
10.11. 표 1에 보이는 b의 어말형은 17∼18세기 고전기 문어에 흔히 보이는 꼴이고, 현대 몽골자에서는 표 2의 7번에서 보는 바와 같은 어말형을 쓰는 것이 보통이다.
12.13. š는 s의 우변에 두 점을 가한다. 표 1의 12번의 어말형 오른쪽 꼴은 주로 옛 문헌에 보이는 특이한 자형이다.
14. t와 d는 같은 글자로 표기한다. 어중자 둘째 자는 자음 앞에 쓰이는 꼴이다. 현대 몽문에서는 외래어 표기에, 모음 앞 어중자의 꼴을 어두에 써서 d를 표기하여 t와 d를 구별하여 적는 일이 있다.
19. y는 어두에서는 j와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나 현대 몽골자에서는 표 2의 19에서 보는 바와 같이, 끝을 올린 개량된 문자를 써서 j와 구별한다.
20.21. 20의 k,g자는 음성 모음자 앞에만 쓰인다. 21은 외래어 표기에 쓰이는 글자이다.
이 밖에 현대 몽골자에는 17세기 이래 티베트어 어음, 범어 어음, 한어 어음을 적기 위하여 만든 갈릭자(galik)라고 하는 특수 문자가 있다. 문자 표 2에 문자 수가 늘어난 것은 한어 어음 표기용 갈릭자 몇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앞에 보인 문자표 1을 중심으로 몽골 문자의 기본적 특징을 설명하였다. 그 기본적 변별 특징만을 보면 위구르식 몽골자와 현대 몽골자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몽골 문자를 위 표에서 본 바와 같이 글자를 자음·모음으로 나누어 낱소리글자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언제부터 나타나는 것인지는 잘 알 수 없으나, 그것은 몽고 사람들의 전통적 이해 방식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근래에 내몽고에서 나온 몽골어학서들 속에서도 표 2와 같은 분석적인 문자표가 보이지만, 몽골 문자를 그와 같이 분석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시도는 서양 사람들에 의해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몽골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몽골 문자를 十二 字頭를 통해서 배워 왔고, 각 자두에 제시된 음절 단위의 문자를 한 글자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해의 바탕은 문자의 특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몽골 문자는 음소 문자라고 하지만, 음소 단위로 분명히 구별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특성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몽골 문어는, 그 문자들이 음소 문자라고는 하지만 완전한 음소 문자는 아니어서, 몽골 문자만을 알아 가지고서는 읽을 수 없는 글이다. 몽골말을 잘 알아야 읽을 수 있고, 로마자로 전사할 수도 있다. 몽골어의 옛 문어(또는 書面語)는 물론 오늘날 몽골자로 쓰인 문어도 그것을 읽거나 로마자로 옮기자면 여러 몽골어 방언의 현대 어음을 토대로 하여 어음을 구별하는 도리밖에 없다.
옛 몽골 문어를 로마자로 전사하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몽골 문어를 전자 방식으로 로마자로 옮기는 일은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다. 따라서 옛 문어를 로마자로 전사하기 위해서는 그 표기가 어떠한 어음을 적은 것인가를 알아내야만 한다. 현대 여러 몽골어 방언들을 비교하여 옛 어음을 재구하는 방법을 택하든가, 그 당시 다른 문자로 기록된 옛 몽골어 기록을 토대로 하여 어음을 추정하는 방법을 통해서 로마자로 전사하는 도리밖에 없다. 이와 같이 옛 몽골 문어의 로마자 전사는 몽고어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학자들마다 로마자 방식이 다를 수 있는 일은 이러한 사정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복잡한 사정 때문에 현대 몽골어를 로마자로 적고자 하는 경우에는 문어의 로마자 전사가 아닌 현대 몽골어의 음운 표기나 음성 표기를 하는 일이 있다. 외몽골에서 몽골자를 버리고 씨릴 문자를 채택하면서 할하 방언을 토대로 완전히 새 정서법을 마련한 것은 이러한 사정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몽골에서도 일반 서적에서는 전통적 몽골 문어를 사용하는 한편, 어학서에서는 문어(서면어)의 로마자 전사 외에, 현대어의 음운 표기 방식으로 로마자로 적는 현대 몽골어의 표기 방법이 이용되고 있다.
2. 만주 문자
몽골 문자를 차용하여 만주어를 적기 시작한 것은 1599년의 일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주실록에 의하면, 뒤에 청나라 태조가 된 누르하치는 가가이 자르구치와 어르더니 박시라는 두 신하에게, 몽골 문자로 만주 말을 적는 일이 어려운 일이 아님을 구체적인 예를 들어 그 방법을 일러주며, 그들을 시켜 만주어의 표기법을 창시한 것으로 되어 있다.
몽골 문자를 그대로 받아들여 만주 말을 적은 초기의 만주자를 無圈点 滿州字라 하고, 그것으로 적은 만문을 無圈点字 滿文(또는 舊滿文, 또는 老滿文)이라 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무권점자의 기록은 1610년대 후반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檔案들이다. 초기 당안들 가운데는 1607년의 일을 적은 당안이 연대상으로는 가장 이른 것이지만, 이 당안이 실제로 필사된 연대는 1920년 전후, 또는 천총 연간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무권점 만주자는, 1632년에 청 태종의 명을 받은 다하이라는 사람에 의하여 만주 말을 적는데 적합한 문자로 개량되었다. 즉 무권점자에 點과 圈을 가하여 a와 e,o,와 u,t와 d, 그리고 k와 g와 h를 구별하는 새로운 문자를 만들었는데, 이 새 문자를 有圈點 滿洲字라 한다. 그리고 이 새 문자로 적은 만문을 有圈點字 滿文 또는 新滿文이라 한다.
새로운 만주자 즉 유권점 만주자가 제정 공포된 것은 정확히는 1632년 3월 7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 당시의 기록인 舊滿洲檔을 보면 3월 7일 전후의 표기가 뚜렷한 변화를 보인다. 그러나 3월 7일을 경계로 하여 舊滿文과 新滿文의 모든 특징이 획연히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1632년 3월 7일이 분기점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1632년을 전후로 상당 기간의 과도적인 문자 사용의 시기가 나타난다. 즉 1632년 이전의 당안에도 간혹 어음을 구별하기 위하여 점을 가한 곳이 보이고, 1632년 이후의 당안에도 점의 누락은 물론 문자 이용에 있어서도 무권점자적인 특징이 부분적으로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이 그 당시의 문서들을 살펴보면, 1632년의 문자 개량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축적된 개량의 방안들이 1632년에 정리 공포된 것으로 보인다. 또 그 뒤에도 부분적인 정리가 뒤따른 것으로 보인다.
1640년대에 접어들면 기본적인 문자의 자형이나 그 이용 방법에 있어서는 완전히 정비된 유권점자 만문의 모습을 보여준다. 유권점자 만문의 규범적인 정서법과 규범적인 어형은 御製淸文鑑(1708년 序)을 거쳐 御製增訂淸文鑑(1771년 序)에 이르러서야 확정된다. 따라서 그간의 유권점자 만문에는 적지 않은 표기법상의 유동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정서법의 문제이고, 기본적으로 어떠한 어음을 어떠한 자형의 문자로 적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1640년대에 확정되는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무권점자 만문은 1599년부터 1632년까지 약 30년가량의 기간 동안 사용된 것이지만, 몇 문자의 사용에 있어서는 몇 단계로 단계적인 차이를 보여준다. 여기서는 가장 초기의 것으로 보이는 무권점자의 표와, 정비된 유권점자의 표를 제시하고, 유권점자 표를 중심으로 몇 가지 특징만을 설명하기로 한다. 각 자형의 기본적인 특징은 몽고 문자와 같은 것이므로 생략하고, 인쇄의 편의상 번호순으로 표를 참조하면서 설명하기로 한다.
만주 문자도 몽고 문자와 마찬가지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쓰며 좌에서 우로 행이 이어진다. 그리고 어두, 어중, 어말의 위치에 따라 글자의 모양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런데 만주 사람들도, 몽고의 경우와 같이, 뒤에 보인 바와 같은 분석적인 자모표가 아닌 음절 단위의 문자표인 十二 字頭를 통해서 문자를 익혔으며, 문자의 단위를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문자의 개량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문자의 성격이 완전한 음소 단위의 문자가 아니라 음절 문자적인 속성을 일부 지니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1,2. a와 e자는 함께 설명하기로 한다. 먼저 모음자 a, e, i, o, u, ū의 어두자를 보면 모두 머리가 e자와 같은 획으로 시작됨이 주목된다. 즉 좌로 90°각도로 그은 획이 어두 e자의 기본이 되는 특징인데, e자와 같은 획 아래에 다시 좌획을 하나 더하면 어두 a자, 45°좌하로 사선 획을 더하면 어두 i자, 좌로 동그라미를 더하여 그으면 어두 o자, o 우측에 점을 가하면 u자, 그리고 o 밑에 어중 i자와 같은 획을 그으면 자가 된다.
a의 어말 둘째 자 및 e의 어말 셋째 자와 넷째 자는 그 앞 자음의 끝 획이 b, p 및 k, g, h의 어중자 둘째 자의 끝 획 모양처럼 우측에서 빗겨 내려오는 획을 가진 글자에 이어지는 경우에 쓰이는 자형이다. e의 어중과 어말자 가운데서 점이 없는 자형은 그 모음 앞의 子音의 자형에 따라 점을 가하지 않아도 a가 아니라 e라는 것이 구별되는 경우에 쓰는 꼴이다.
[만주 문자표 1] 초기 무권점 만주자
[만주 문자표 2] 유권점 만주자
예를 들면 ta와 te는 a와 e는 모양이 같고 t자가 서로 다른 모양으로 나타난다. 즉 자음의 모양에 따라 ta와 te가 구별되는 것이다. ta와 te의 우변에 점을 가하면 da,de가 된다. 즉 우변의 점은 모음 a와 e, o와 u를 구별하는 데도 쓰이고, 자음 k와 g, t와 d를 구별하는 데도 쓰인다.
3. 어중 둘째 i, 즉 두 번 사획을 그은 글자는 ai, ei, oi, ui와 같은 이중 모음의 경우의 i를 적은 글자인데, 이때 로마자 전사는 aii로 하지 않고 ai로 한다. 자형에 따라서는 두 사선 가운데 첫 번째 것은 아주 짧게 쓰기도 한다. 몽고어의 경우는 ayi와 같이 yi로 전사한다. 어말 i의 우측 글자는 어미 분리하여 쓰는 경우의 글자이다.
4,5. o와 u의 어말자 가운데 각각 둘째와 셋째 자, 즉 우측으로 획을 돌려 긋지 않은 o자와 u자는 b,p 및 음성자 k,g,h자에 연하는 자형이다. 즉 낱말이 bo,bu,po,pu,ku,gu,hu 등으로 끝날 때 쓰는 자형이다. u의 어중과 어말자 가운데, 점이 없는 자형은, 점을 가하지 않는 e자의 경우와 같이, 앞 자음의 자형에 의하여 o 가 아닌 u임이 구별되는 경우의 자형이다. 즉 tu, ku 등과 같은 경우인데, 이때 점을 가하면 du, gu가 된다.
6. 유권점자 ū는 양성 모음 계열에 속하는 모음인데, 원래 이 문자는 몽고어의 경우에는 음성 모음 ö, ü 표기에 쓰이던 것이다. 그리고 초기 무권점 만주자에서도 음성 모음 u표기에 쓰이던 것이다. 초기 무권점자에서는 대체로 몽고어에서 사용하던 대로, 몽고자 o, u자로 만주어의 o를, 그리고 몽고자 , ü자로 만주어의 u를 표기하였다. 그런데 유권점자가 시행되면서 o에 점을 가하여 u를 표기하게 되자, 몽고자 ö, ü자는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러자 이를 유권점자에서 ū로 나타나는 한정된 자리에만 쓰이는 문자로 전용하게 된 것이다. ū가 나타나는 자리는, 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주로 kū, gū, hū의 경우인데, 이때 k, g, h는 양성 모음자와 연결되는, 몽고어에서는 q(χ)로 전사하는 자형이다.
무권점자에서 유권점자로 넘어오면서 가장 혼란을 빚었던 표기는 바로 원순 모음의 표기인데, 그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 ū이고, 그 유동 과정은 만주어 음운론 연구에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이 만주어의 는 대체로 몽고어의 u [o] 또는 [ ]와 같은, 만주어의 좁은 [o]를 적은 것으로 보인다.
7. 어중 n자 가운데 좌변에 점이 없는 글자는 minde의 경우와 같이 자음 앞에 오는 n의 표기이다. 어말의 n에는 점을 가하지 않는 것이 원칙인데, 특정한 漢語 표기인 경우에는 어말 n에도 점을 가하는 일이 있다.
8,9,10. k, g, h의 어두 및 어중자 가운데 각각 첫째 자형은 모음 a, o, ū가 연할 때의 자형이고, 둘째 자형은 모음 e,u,i가 올 때 쓰이는 자형이다. k의 어중 셋째 자와 넷째 자는 각각 어중에서 자음 앞에 올 때 쓰이는 양성자와 음성자이다. 이 경우 양성자의 경우에만 좌측에 두 점을 가하는 것이 보통이다.
11. b의 어말자는 o의 어말자보다 좀 길게 내려그어야 한다.
12. p는 주로 의성어와 차용어에 쓰이는 글자인데, 초기 무권점자에는 보이지 않는다.
13,14. š는 무권점자에서는 S 또는 SI로 표기되어 있다. 몽고자에 s와 š를 구별하는 문자가 있었음에도, 초기 무권점자에서는 이를 받아들여 쓰지 않고 주로 SI로 표기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15,16,. t와 d는 오른쪽에 점을 가하여 구별한다. t와 d의 어두, 어중의 첫째 자는 모음 a,o,i가 뒤따를 때 쓰는 것이고, 둘째 자는 모음 e와 u가 뒤따를 때 쓰는 글자이다. ti와 di는 차용어(주로 한어)에만 쓰인다. 이러한 양성 자형과 음성 자형의 구별 및 t와 d의 구별은 유권점자 제정 시 고안된 것이다. 어중 우측 글자는 bithe의 t와 같이 자음 앞에 오는 t를 표기하는 자형이다.
19,20. c와 j의 자형은 무권점자와 유권점자가 같으나, 무권점 만문에서는, 유권점자 만문의 어형과 비교해 보면, c와 j의 표기에 혼란을 보이고 있다.
21. y는 어두 j자의 끝을 좀 올린 꼴인데, 무권점자에서는 j와 같은 자형을 쓰고 있다.
23,24. f의 어두 및 어중의 첫째 자형은 모음 a, e가 뒤따를 때 즉 fa, fe의 f 표기에, 그리고 둘째 자는 fo,fu,fi의 f에 쓰인다. 24번의 w는 모음 a,e가 뒤따를 때만, 즉 wa,we 에만 쓰이기 때문에 f와 혼동되지는 않는다. 무권점자에서는 유권점자 표기와 대비해볼 때, f가 b로 표기되는 일이 흔히 있다.
25. ng은 ngga, ngge, nggi, nggo, nggū, ngko 등과 같이 g와 k 앞과 어말에만 쓰인다.
이 밖에 만주 문어에는 한어 표기를 위한 다음과 같은 특수 문자들이 사용되고 있다. 이 특수 문자의 로마자 표기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여기에 쓴 로마자 표기법은 필자의 표기안이다.
[ 만문 특수 문자 ]
<참 고 문 헌>
- 池上二良, トゥング ス語, 市河三喜·服部四郞編, 世界言語槪說 下卷, 東京, 1955.
服部四郞, 蒙古字入門, 東京, 1946.
道市, 蒙古語簡志, 民族出版社, 北京, 1983
舊滿洲檔, 國立故官博物院 影印, 臺北, 1969.
淸文啓蒙 Cing win ki meng bithe, 永魁齋藏板, 1730
欽定淸漢對音字式, 1772.
N. Poppe, Grammar of Written Mongolian, Otto Harrassowitz, Wiesbaden, 1954.
N. Poppe, Intriduction to Altaic Linguistice, Otto Harrassowitz, Wiesbaden, 1965. - 원문출처 : 국립국어원 누리집 http://www.korean.go.kr/nkview/nklife/1985_3/3_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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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한사전 전자책 - 국립중앙도서관 전자도서관에서 원문통합검색란에 '만한사전' key-in
대지문화사 1995년 발행한 김득황교수의 저술로 발행하게된 경위를 저자가 쓴 책의 머리말을 통해서 소개해 드립니다.
"일찌기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강희시대에 제작한 청문감을 기초로 독,불 어역 만주어 사전이 나왔고 1875년에는 Ivan Zakharoff의 만-러사전이 편술되었다.
일본에서는 해방 전 동양학 연구의 융운을 타고 우전정羽田亭의 만화滿和사전이 나오고 해방후에도 만주구어기초어휘집이 나오고 경도대학에서는 막대한 인력과 재력을 투입하여 1966년에 만,한,몽,장,회 5족어를 대역한 오체청문감의 번역을 완성하였다. 실로 경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최근 미국에서는 와싱톤대학의 Jerrg Norman이 만한사전(A Concise Manchu-English Lexicon)을 편찬하여 만주어 학계를 놀라게 하였다. 그러나 만주어와 깊은 관계를 가졌던 우리나라는 이 영역에 있어서 아직도 공백상태에 있다. 이제 우리도 무엇인가 하여야 하며 이 빛나지 않는 만주어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용기를 주어야 하겠다.
나는 만주어 학자는 아니지만 만주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고조선사에 흥미를 가지고 연구하다가 우연히 만주어와 인연을 맺게된 지 반세기가 넘었다. 처음에는 다른 외국인들이 만든 사전에 못지않은 만한사전을 펴내려는 야심을 가졌으나 나는 어느덧 내일 일을 알 수 었는 대질의 고개에 서있고 이에 더하여 10수년동안 고통을 받고 있는 안근무력증으로 언제 내 안근의 활동이 정지될 지 알 수 없으므로 독자를 만족시킬 만한 사전의 편찬이라는 것을 단념하고 다만 얼마 안되는 어휘라도 풀어놓는 것이 나의 의무로 생각하여 미진하나마 이 작은 사전을 내놓게 되었다.
이 사전에 혹시 해석을 잘못이나 발음의 표기는 물론이고 한글의 표기에도 잘못된 점이 있으리라고 생각되는데 이 미진한 부분은 후학들의 보완에 맡기도록 하고 다만 나로서는 이 불완전한 책이 적은 수의 만주어 학도들에게 얼마간의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다행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이 변변치않은 책을 엮으면서 북경에 다섯차례나 내왕하며 적지않은 어려움도 있었으나 어떻든 4년여만에 빛을 보게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범례 >
1. 이 작은 사전에서는 만주어에서 흔히 쓸 수 있는 보통용어의 어휘를 모아 수록하였다.
희귀한 동식물이나 관아,관직,의례,군기,예술,고어등에 관한 자세한 어휘는 될수록 싣지 않도록 하였다.
2. 여기에 올린 어휘는 오체청문감, 청문총회,만한육부성어,Jerrg Norman의 A Manchu-English Lexion과 우전정의 만화사전등을 참고로 하여 일상어휘를 뽑아서 수록하였으며 뜻의 해석에 의문이 있는 것은 청문감을 따르도록 하였다.
3. 이 책에는 만주어 원문을 수록하도록 하였다. 근래 중국의 학자를 비롯하여 일본,미국등의 학자들이 만주어를 로마자로 표기하여 사용하는 경향이 있으나 로마자로 만주어를 표기하는 것은 회화에는 편리할 지 모르겠으나 글을 보고 읽는데는 결함도 적지 아니하므로 나는 이책에서 만주문자 원문을 올리기로 하였다.
4. 발음표기는 주로 P.G Von Mollendorff의 만주어문법(A Manchu Grammar)를 수용하면서 일부는 나의 견해대로 표기법을 바꿨다
예를 들자면 C를 Ch로, Ts'를 Ts로, Dz를 J로, Zi를 R'u로 바꾼 것등이다.
5. 만주문자의 표기는 한글로 표기하여야만 가장 정확하나 시류를 따라 로마자 발음기호를 쓰도록 하였다.
6. 역문은 어려운 작업이다. 일부 외국인의 사전에는 오역도 있었는데 예를 들자면 입추를 [가을이 서다]라고 번역하였다. 이러한 오역이 있는 듯한것은 원문 청문감과 청문총회를 참고하면서 오역을 피하도록하고 본뜻을 살리도록 하였다.
7.원문의 번역은 될 수 있는대로 한자사용을 피하고 쉽게 알아 볼 수 있도록 한국말로 의역하였다.
8.만주어에도 낱말하나에 몇가지 뜻이 있는 것이 많이 있으므로 이런 경우에는 몇가지 뜻을 다 올리도록 하였으며 또 한문으로서 한국어화한 낱말도 많이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한문을 한글로 표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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