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7. 00:38

강우방 이화여대 교수이고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대표가 중국 심양의 요녕성박물관을 방문하고 중국의동북공정성공후 진행되고 있는'요하문명공정'의 심각성을 국내에 알리기 위해 조인스에 올린글입니다.

모든 동북일대에서의 역사를 최종적으로 중국역사로 귀속시키고자 하는 '화하일통'의 논리를 요녕성박물관의 전시를 통해 대내외적으로 선전하는 중국정부의 시책과 이에 따라 고조선과 부여사마저 중국역사로 흡수해버리는 것이 현실있니다.
中, 고구려 이어 “부여도 우리 역사”
(출처 : 조인스블로그 http://blog.joins.com/sniper222/6531772)
지금 중국 선양(瀋陽) 랴오닝(遼寧)성 박물관에서 ‘요하문명전(遼河文明展)’이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동양사, 더 나아가 세계사를 새로 쓰게 하려는 기획이다. 요하 유역을 아우르는 ‘요하문명’이 세계적인 문명 발상지임을 세계에 알리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만리장성 밖 요서·요동을 포괄하는 요하문명 전체를 자기 역사로 만드는 ‘요하문명 공정’에 중국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동북공정’을 넘어서는 일이다.



그림1 중국이 부여의 유물로 분류해 랴오닝성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서차구유적(서기전 3세기~서기전 1세기) 고분 출토 금귀고리.
(부여는 고구려와 백제의 뿌리를 이룬 나라이지만, 전시설명판에는 중국 동북지역 소수민족이 세운 국가로, 일찍부터 한(漢)왕조에 복속됐다고 적혀있다. / 랴오닝성박물관 도록 )
일찍이 중국은 만리장성을 쌓은 뒤, 장성 밖의 무지몽매한 새외(塞外)민족과 차별을 두었다. 그것은 중국문명의 ‘북방한계선’을 긋는 상징성을 띠고 있다. 그런데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만리장성 밖에서 중국문명보다 시기적으로 앞설 뿐만 아니라 더 발달된 구석기·신석기문화가 속속 확인됐다. 요하유역의 구석기문화인 영구(營口)의 금우산인(金牛山人)은 북경인(北京人)보다 형질인류학적으로 더 발달된 것이다. 이 지역 사해(査海)의 신석기문화는 서기전 8000년에 이르며, 신석기 말기(서기전 3500년~2500년)의 것이 바로 독특한 옥기 작품을 낳은 홍산문화(紅山文化)다. 이번 전시에서 신석기 빗살무늬토기에서 개구리의 뒷다리를 물려고 하는 뱀의 도상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신라의 도우에 많이 나타나는 도상과 똑같지 않은가.
그런데 전시 중 세 번째 테마 ‘화하일통’은 중국(=華夏)이 요하문명을 통일(=一統)했다는 뜻이다.
우리 민족의 원류를 이룬 부여(서기전 3세기~서기 5세기)와 고구려는 물론, 삼연(북연-전연-남연)의 유물이 이 주제 아래 전시되고 있었다.
부여를 소개하는 코너에서는 “부여는 우리나라 동북지역에서 이른 시기에 국가를 세운 소수 민족의 하나”라고 기술했다.
중국은 지금까지 금귀고리나 철검 등 위세품이 출토된 랴오닝성 서풍현 서차구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을 ‘초기 철기시대 것’이라고만 소개해 왔다. 그러나 이번 전시부터는 ‘(중국에 속한) 부여’ 유물이라고 처음으로 밝혔다. 요하지역에서 ‘화하일통’의 역사는 최소한 2500여 년은 됐음을 선언하는 셈이다.
내몽골·요하유역의 각 유적과 이 일대 평원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은 빗살무늬토기, 고인돌, 요령식 동검, 다뉴세문경, 옥룡(=곡옥) 등을 공유하는 알타이어계 요하문명권이었다. 한국은 요하문명의 굳건한 바탕 위에 중국 문명을 접목하며 역사를 형성해 왔다.
이 지역에서는 우리 말고도 타민족들의 영웅 호걸들이 등장해 여러 제국을 건설했지만 결국 중국에 흡수되고 말았다. 그러나 고구려는 한 때 요하문명의 패자(覇者)로 비록 중국과 신라의협공에 멸망했지만 그 정신과 예술은 지금까지 맥맥이 살아 남아, 세계적으로 독창적인 문화를 형성하도록 활력소를 제공해준 요하문명의 유일한 문화국가였다. 북부여-고구려-남부여(백제가 사비로 천도하면서 바꾼 국호)-통일신라-고려-조선-한국이라는 전승관계를 통해 우리 민족이 요하문명의 완성자이기에, 중국은 사활을 걸고 동북공정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중국은 고구려를 넘어 한국의 미래까지 노리고 있는 셈이다.
한국으로 돌아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북녘의 문화유산’ 특별전을 보러 전시장 입구에 들어섰을 때 놀라움에 발걸음이 멈칫했다. 평양에서 출토된 높이 90㎝의 당당하고 아름다운 빗살무늬토기. 요하문명의 빗살무늬 토기들 가운데 황제같은 늠름한 모습이었다. 우리 문화의 자화상이라고 생각했다.
강우방 이화여대 교수·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대표
입력 : 2006.06.30 22:55 59' / 수정 : 2006.06.30 23:00 53'
2009. 2. 7. 00:30
<동북공정의 결정판 ‘요하문명론(遼河文明論)’>

중국당국의 고구려,발해역사 편입을 위한 동북공정사업이 한국정부의무기력한 방관속에 성대하게 종료되었습니다.

이제 새로이하가점상하층유적등을 비롯한 단군조선문명관련 사업과 단군조선이전의 시원문명인 홍산문명을 편입코자 중국 당국은 요하문명론의 기치를 올리며 다음단계의 신규국가전략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요하문명권을 세계 4대문명발상지에 앞서는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권으로공인키위한 국가전략사업을 다각도로 추진중에 있으며 그 세부사업의일환으로 심양의 요녕성박물관에서는 2006년 6월부터 '요하문명전'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요녕성박물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요하문명전'관람후기 글들은 여행시 상기 박물관을견학한 방문자들이개인블로그에올리고 있습니다.

사진 1. 심양 요녕성박물관 및 주변전경





1. ‘동북공정’ 후속으로 ‘요하문명’을 새롭게 설정하고 있다.

우실하 (한국항공대 교양학부 교수, 사회사상, 한국문화사)

동북공정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있는 사이에, 중국에서는 그 후속 논리로 요동과 요서를 포함한 만주지역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요하문명권’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물론 그 요하문명권 내의 모든 고대 민족들은 모두 중화민족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결국,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중국고대문명탐원공정(中國古代文明探源工程)→동북공정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역사관련 공정들의 최종 목표는 세계 최고(最古)의 ‘요하문명’을 바탕으로 ‘대중화주의’를 완료하는 것이라고 보인다. 모든 공정이 완료되는 순간 고구려, 발해는 물론이거니와 이 지역에서 발원한 고조선까지도 완벽하게 중국사에 편입되는 것이다.



사진2. 요녕성박물관 외벽의 <요하문명전> 안내판






2. 만주지역 ‘요하문명권’을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권으로

이제까지 중국은 중국 역사의 근원을 북경원인의 출토지인 북경 인근의 구석기시대와 황하 중류의 신석기시대 앙소문화(仰韶文化)를 포함하는 ‘황하문명권’으로 잡고 있었다. 앙소문화는 기원전 4500년까지 올라가는 농경 신석기문화로, 유목을 바탕으로 한 북방문화와는 구별된다. 예로부터 중화민족은 만리장성을 ‘북방한계선’으로 하여 북방 민족들과는 분명한 경계를 두었었다.

그런데 20세기 중반이후 장성 밖 동북 만주지역에서 중원문화보다 시기적으로 앞서고 더 발달된 신석기문화가 속속 확인됐다. 이 지역 신석기문화인 소하서(小河西)문화는 기원전 7000년, 흥륭와(興隆와)문화는 기원전 6200년, 사해(査海)문화는 기원전 5600년까지 올라간다. 특히 기원전 3500년까지 올라가고 대규모 적석총과 제단이 확인된 요하(遼河) 일대의 홍산문화만기(紅山文化晩期: 기원전 3500- 기원전 3000) 의'우하량 유적'의 발견은 중국으로서는 충격이었다.

요하 일대 신석기와 청동기 유적에서는 중원문화권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한반도에서 많이 보이는 빗살무늬토기, 고인돌, 적석총, 비파형동검, 다뉴세문경 등이 대량으로 발굴된다.이것은 모두 내몽골-만주-한반도로 이어지는 북방문화 계통이다.한반도는 이 ‘요하문명권’을 바탕으로 중원문명을 흡수하며 역사를 형성해 왔고, 중국은 이러한 요하문명권과 한반도의 연계성을 단절하고, 요하문명권을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권으로 만드는 작업을국가의 전략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80년 초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을 바탕으로 ‘현재의 중국 국경 안에 있는 모든 민족의 역사를 중국사에 포함’하려는 중국은, 황하문명권보다 이르고 발달된 ‘요하문명권’을 중화문명의 발상지의 하나로 재정립하고 있다. 곧, ‘중국의 요하문명권’이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보다 이른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이라는 논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2005년 7월 24-31일까지 적봉에서는 홍산문화 명명 50주년을 기념한 <홍산문화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중국학자 100여명과 외국의 학자 15명을 초대하여 50여 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중국 학자들도 홍산문화의 주인공을 예맥족의 문화로 본다. 그러나 이런 학술대회를 통해 중국의 홍산문화를 주도한 예맥족들이 남하하여 고구려 등을 세운다는 논리를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2006년 6월부터 9월까지 심양 요녕성박물관에서 <요하문명전>이 열리고 있다. 이 전시의 핵심 주제인 ‘화하일통(華夏一統)’은 중국(華夏)이 요하문명권을 통일(一統)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상론한다.

이런 요하문명권을 확립하기 위한 선행 작업으로, 9차 5개년 계획인 ‘9.5계획(1996-2000)’에서는 ‘하상주단대공정’이 진행되었다. 대대적인 발굴, 연대 측정, 일식·월식 기록의 비교 연구 등을 통해서 하․상․주의 존속 연대를 공식적으로 확정지었다. 하(夏)나라 존속연대( B.C. 2070 - B.C. 1600)의 공식화는 중국의 ‘역사시대’를 무려 1229년이나 끌어 올린 것이다.

‘하상주단대공정’의 후속 작업으로 ‘10.5계획(2001-2005)’의 일환인 ‘중국고대문명탐원공정’을 시행하고 있다. ‘중화문명의 근원을 탐구한다’는 ‘중국고대문명탐원공정’은, (1) 신화와 전설의 시대로 알려진 ‘3황 5제’의 시대까지를 중국의 역사에 편입하여 중국의 역사를 1만 년 전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1) 황제이 손자인 고양씨(高陽氏) 전욱(顓頊)과 고신씨(高辛氏) 제곡(帝嚳) 두 씨족 부락이 지금의
하북성과 요녕성이 교차하는 유연(幽燕)지역에서 살면서 모든 북방 민족들의 시조가 되었으며, (2) 만주지역 ‘요하문명권’의 핵심인 홍산문화는 고양씨 전욱 계통에 의한 문명이며, (3) 고주몽의 ‘고’씨 성도 고양씨의 후예이기 때문에 붙은 것이라고 본다. 결국 이집트나 수메르 문명보다도 오래된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임을 밝히려는 거대한 프로젝트인 것이다.

‘요하문명권’을 통해 21세기 ‘대 중화주의’의 청사진을 그려가려는 중국의 입장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역사적으로 한민족과 경계를 다투던 만주지역을 확실하게 중국사로 편입해서 한반도 통일 이후에도 논란이 일지 않을 정도로 확실하게 ‘대 한국(혹은 한반도) 전략’의 수립하는 것이었다. 그 구체적인 전략이 동북공정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보인다.



3. <요하문명전>각 전시실의 주제 및 핵심적인 내용

현재 요녕성 박물관에서 전시중인 <요하문명전>은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을 알기 쉽게 도표화하면 아래와 같다.

<도표1> <요하문명전> 각 전시실의 주제 및 핵심적인 내용



우리가 주의해서 보아야할 것은, (1) 제1전시실에서 보듯이 ‘중화문명의 첫 번째 서광이 요하 유역에서 일어났다.’고 보는 시각과, (2) 제2전시실에서 보듯이 이 지역이 ‘상·주 시대부터’ 중원왕조에 속해 있었고, 이 시기에 소수민족들은 이미 ‘다원일체(多元一體)’의 관계로 중화민족 안에 들어왔다는 시각, (3) .제3전시실에서 보듯이 진(秦)·한(漢) 시대를 기점으로 이 지역이 중원왕조의 판도에 들어왔고, 이 시기에 고구려를 포함한 각 소수민족들이 ‘중국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민족 대융합’을 통해 ‘중화민족으로 통일’되었다는 시각이다.

이런 요하문명권 논리를 바탕으로 동북공정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학자 가운데 하나인 경철화(耿鐵華: 통화사범대학 고구려연구소 부소장 겸 교수)는 “요서 지방에서 발생한 홍산문화가 서쪽으로 가서 은나라를 세우고, 동쪽으로 옮겨와 고구려와 부여 같은 나라의 기원이 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중국에서는 아즈텍문명, 마야문명을 일으킨 이들도 상나라의 후예들이라는 논리도 개발하고 있다.

사진 4. 제3전시실 입구‘화하일통’
: 진(秦)·한(漢) 시대를 기점으로 이 지역이 중원왕조의 판도에 들어왔고, 이 시기에 고구려를 포함한 각 소수민족들이 ‘중국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민족 대융합’을 통해 중화민족으로 통일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진5. 제3전시실 입구‘화하일통’에 전시된 고구려 관련 유물들(집안시 출토 금동제 관식, 신발, 말안장)



사진6. 제2전시실 입구의 ‘상주북토’ 와 ‘방국문명’ 안내문
: 초기 청동기시대인 하가점하층문화부터 하(夏)·상(商).주(周)에 이르기까지 북방의 모든 소수민족들은 중원왕조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고, 상나라 이후에는 ‘상주북토(商周北土)’ 내의 ‘방국(方國)’으로 존재했었다고 본다.



<우실하(禹實夏>
연세대 사회학과 학사,석사,박사를 마치고 동양사회사상, 문화사, 문화이론 등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중국 요녕대학 한국학과 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한국항공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의 해체와 우리 문화 바로 읽기』(1997), 『한국 전통 문화의 구성 원리』(1998), 『전통음악의 구조와 원리: 삼태극의 춤, 동양음악』(2004), 『동북공정의 선행작업들과 중국의 국가 전략』(2004)등의 단독 저서와 『동양을 위하여 동양을 넘어서』(2000, 공저) 등 4권의 공저가 있으며 20여 편의 논문이 있다.
(메일: woosilha@hau.ac.kr홈페이지: www.gaonnuri.co.kr)